합천군의회는 일해공원을 만드는 것보다 5.18 광주사태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해공원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칭송을 받을 것이다 합천군과 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진실을 규명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일해공원은 그 다음이다 이런 엄청난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공개되고 있는데도 검찰과 정치권이 침묵하고 언론들도 외면하고 있는데 합천군이 진실을 찾는데 노력하여야 하며 사실인지 아닌지를 명명백백하게 가려서 의혹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정일정권 광주항쟁 개입 증거자료 北서 가져올 것”
●“광주항쟁 때 투입됐다가 사망한 북특수부대원 무덤 북한에서 직접 봤다”
●광주항쟁 당시 北특수부대원들 서해와 동해로 양면 침투
●교도지도국 중심 대남 北특수부대요원 수 15만 명 이상
●유사시 南 대상도시별 후방 교란 침투 北특수부대 각 3개대대 할당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 ⓒ뉴스한국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지난해 연말 기자회견을 갖고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김정일 정권이 북한군특수부대요원들을 대거 침투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5.18 관련 단체들이 즉각 반박 긴급성명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 되고 있다. 두 단체간의 설전은 점차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주장에 대해 5.18민주화 단체들은 “이들 주장의 내용은 그 진위 여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가지도 없는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5.18민주화운동유공자들의 명예는 물론,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지난 수십년 동안 노력해온 국민들의 피와 땀을 욕되게 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5.18민주화단체들은 자유북한군연합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5.18민주화 단체들의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지난 1월 23일 ‘5.18관련 단체들은 김정일 정권을 광주의 민주투사로 둔갑시키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대국민 공개답변 서한을 내놓았다. 이 공개서한을 통해 자유북한군인연합은 김정일 정권이 광주항쟁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을 침투시켰다고 재차 강하게 주장했다.
27년 전 5.18 광주항쟁 당시 야만적인 신군부 독재정권의 계엄군을 상대로 봉기한 광주시민의 항거는 이 땅의 민주화 역사 속에 그 어떤 논리로도 훼손될 수 없다. 광주 망월동에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안고 산화한 민주열사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긴 광주항쟁 민주열사들의 숭고한 넋이 이 땅의 민주화 역사 속에서 온전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유북한군연합이 주장한 김정일 정권의 개입설은 진실 규명 차원에서 밝혀져야 한다. 그래서 뉴스한국은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의 인터뷰에 이어 5.18민주화 관련 단체와도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다.
뉴스한국은 지난달 31일 서울 정동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자유북한연합 임천용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1999년 12월 탈북했다. 탈북하기 전 그는 북한군특수부대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상위(대위)였다.
임 대표는 “5.18 광주항쟁이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봉기한 그 뜻을 인정한다”면서 “그러나 당시 김정일 정권이 정예의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을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시킨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기에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측은 작년 연말 기자회견에 이어 지난 1월 23일 또다시 ‘5.18 관련 단체들은 김정일 정권을 광주의 민주투사로 둔갑시키지 말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주장한 5.18 광주사건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이 대거 침투하였다는 지난해 기자회견(2006.12.20)과 관련하여 5.18 관련 단체들이 우리 주장을 남한 민주주의 발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사회적 책동이며, 배후세력의 조종으로 날조되고 조작된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우리를 공격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5.18관련 단체들의 긴급성명을 검토했고, 그 결과 5.18 관련 단체 역시 우리가 주장하는 진실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5.18민주유공자회, 5.18민주화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등 세 개의 단체에서 우리의 기자회견 이후 긴급성명서를 내놓은 것을 보니까 주장하는 내용의 요지는 단 하나였다.
광주문제가 법적으로 민주화가 인정된 문제라는 것과, 우리가 지난 연말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사진들에 대한 반박이었다. 또 우리의 주장을 반사회적인 책동을 기도하려는 의도라며 배후자들이 있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광주학살의 주범을 김정일 정권이라고 폭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사회적 책동자가 되고 불법행위자들이 될 수 있는가.
5.18광주항쟁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초기부터 투입되었는가
그 부분에 대해 확실히 판단하는 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광주사건이 터진 뒤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광주사건의) 중간에 개입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광주가 터지기 전에 터질 것이라는 보고는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김정일은) 김중린(70세. 현 北노동당비서 서열21위)을 거쳐 정찰국 5부장 하던 이하일(59세. 전 노동당 군사부장 은퇴 추정)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하일 그 사람 북한에서 유명했다. 북한에서 그 사람을 ‘적공’이라고 부른다. 대남 사업에서도 ‘종심(從心)’이라고 무장간첩 집단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현업(특수부대요원의 실제 작전투입)을 움직였다. 예를 들면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이승복 사건 등을 일으킨 특수부대를 움직이던 사람이다.
광주 문제가 터지기 전에 김일성, 김정일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김일성이가 당시 루마니아 등 유럽 방문 예정돼 있을 때 이 자료는 대남사업부에서 나온 말이다.
황장엽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한마디 열어야 되는데 그 양반도 우리 앞에서는 시인하고 거기 있을 때(북한에서)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또 한 사람(탈북자)이 있는데 이 문제를 남한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서기를 주저한다. 그 사람이 증언하지 못하도록 국정원에서 막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 정권이 광주항쟁에 개입한) 자료들은 북한에 상당히 많다. 광주 문제 북한군이 개입했던 자료가 실제로 80년대 중반께 인민군 특전사 부대에서 광주문제에 대한 문제가 합법적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다루면서 이쪽(남한) 사람들을 성향을 볼 때 무지해 보인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상당히 답답하다고 느낀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광주시민을 상대로 자행한 야만적 폭압의 순간. 그러나 광주항쟁이 터진 것을 틈타 북한 김정일 정권이 정예의 특수부대요원들을 광주로 침투시켰다고 말하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주장도 반드시 규명돼야 할 문제다.
5.18광주항쟁 당시에 북한군 특수부원들이 투입되었다는 증거는 모두 북한에 있고, 남한에서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제시할 만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증거자료는 없는가
현재는 남한에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아직 언론에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북한에서 (확실한 자료) 하나 더 가져 올 것이 있다. 그 때는 부인하지 못할 것을 들이댈 것이다. 그 때는 더 이상 말장난이 아니다.
(김정일 정권)이 남한에 내려와서 죽은 특수부대원들의 시체는 못 가져갔지만 북한에는 그들의 빈 무덤들이 있다. 김신조 부대 청와대 습격 왔다가 죽은 사람들도 북한에 빈 무덤이 다 있다. 김신조 부대 소속으로 여기서 죽었던 ‘함장건’이라고 청와대 습격했던 사람이다. (북한에 있는) 이 사람의 빈 무덤 묘비에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열사 장렬히 전사 1968년 1월…’라고 적혀있다. 그의 동생 ‘함장관’은 80년 광주에 내려와서 죽었다. 형제의 묘가 고향에 있다.
광주사건에서 죽었던 특전사 부대원들의 무덤에는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적후에서 장렬히 전사 1980년 5월…’라고 씌여 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대외적으로 공개돼 있는 것이다. 이게 거짓말인가.
남한에서 침투했다가 사망한 북한군인의 무덤을 본 적은 있는가
그건 확실히 봤다. 각 고향들에 다 있다. 함장관과 함장건은 내가 왜 잘 아는가 하면 그 사람 우리 동네사람이다. 여기 왔다가 죽은 함장관은 북한에서 상당한 우상이었다. 그 부모들이 평양에 가서 김일성이가 다 만나고 김일성이가 부하들이 남조선 혁명에서 다쳤다고 훌륭한 우리가 아들들을 대신해서 부모님들을 공경하겠다고 김일성이 그 말을 했다. 김일성이 한 가정에다 대고 발언을 해주면 가정의 큰 대들보다, 가보다. 그 발언 효과가 오래 간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 자료를 이쪽 (남한)으로 가져오는가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북한에 있다.
북한 내부에 활동 중인 사람들이 있는가
우리(자유북한군인연합)는 북한 내에서 항거하는 반정부 무장단체다. 공식적 명칭은 북한 해방군이다. 이 문제(광주항쟁 당시 북한 특수부대 투입 규명 문제)는 우리가 답답해서 다루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다룰 문제가 아닌데 다른 탈북단체는 이 문제를 다룰만한 뱃심이 없어 우리가 다루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북한특수전부대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한 내로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그렇다. 마음만 먹으면 정도가 아니라 내려오려면 금방 내려온다.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수가 얼마인가. 한국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에 교도지도국이라고 있다.
여기에서(남한에서) 특수8군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교도지도국이다. 교도지도국은 (세부적으로) 각 병과 별로 탱크지도부, 포지도부, 경보지도부로 나뉜다.
경도지도부만 해도 여기(남한)에서 전부 12만 명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어리석은 계산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12만 명이 훨씬 넘는다. 북한의 특수부대 체계가 상당히 광범위하다. 내가 알기로 남한 특수부대는 일곱 개로 알고 있고, 다 돌아 봤는데 북한보다 상당히 열세하다.
남한 특수부대원은 대체로 신장이 크고, 다루는 무기 수준도 북한에 비해 좋다. 그러나 훈련하는 것, 훈련의 질을 비교하면 북한과 비교가 안 된다. 북한은 훈련을 현장에서 한다. 현장에서 굶어가면서 교육받는다. 그런데 여기는 너무 잘 먹고 배부르게 훈련한다. 북한 교도지도국 인원만 우리가 알기로 15만 명 정도 된다.
그리고 북한 인민군은 각 군단마다 2개의 특수여단이 있다. 또 각 군단에 완전히 정예화된 정찰특수정찰대의 한 개 대대가 또 있다. 그 다음에 사단 산하에 일개 특수대대가 있다. 그렇게 보면 북한에 사단이 100개 사단이 있다. 이를 모두 집계하면 북한의 특수부대원은 상당한 인원이다.
이렇게 집계하면 20만 명이 훌쩍 넘어간다. 북한 특수부대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그 무력이 남한 종심에 매달리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서 광주문제가 다시 한 번 터진다면 그땐 남한이 감당 못한다.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정신적인 훈련, 즉 ‘수령을 위해서는 죽어도 된다’ 또는 ‘죽는 게 영광이다’ 식의 사상의식이 완전히 세뇌되어 인이 박혀 있다.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일반 명령을 둘째 치고 훈련 중에 수류탄의 고리가 뽑혀져 떨어질 때 눈치 볼 새 없이 서로 덮친다. 죽는 순간에 ‘장군만세 수령만세’ 외친다. 이런 식으로 죽으면 김정일 TV도 보내주고 선물주는 것을 사회적으로 하니까 그렇게 죽는 것을 상당히 값어치 있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죽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이게 상당히 무섭다는 것이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지금 광주문제 다루는 것 사실은 오기라면 오기로 다루는 것이다.
사실 오기가 없으면 못 다루는 것이다. 나도 오기로 밀어 붙이고 있다. 잘못하면 내가 죽는데 만약에 광주문제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남한에도 북한에서 침투해 있는 사람이 많다. 시시때때로 내 주위를 맴도는 북한 특수조가 있어 보인다. 저번에 등산간 적이 있었는데 나하고 같이 간 분이 계속 우리를 따르는 두 사람이 있다 길래 쳐다보니 피해가 버렸다. 이런 일들을 남한에서 자주 목격한다.
그래서 자유북한군인연합이 광주문제에 대해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손대지도 못하고 손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김정일이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 펴낸 ‘광주평록’이라는 책이 발간돼 있다. 그 책에 “우리는 광주에서 크게 얻었지만 노칠 것은 놓쳤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남겼다”라는 김정일의 발언 내용이 들어 있다. 광주 문제에 의도적으로 상당히 관심이 컸다는 뜻이다.
김정일은 광주봉기가 있던 바로 그해 1980년 10월 12일에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었다. 그 시점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등장했다. 당시 김정일은 “광주는 성조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이라고, 좀 더 큰 선물 드려야 하는데 아쉽게 되었다”고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북한정권은) 1970년대 중반부터 대남사업문제를 김정일이 사실 배후에서 총괄했다. 김일성은 70년대 중반부터 대남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대남사업은 김정일이 총괄했다. 광주문제도 김정일이 총괄했다.
북한 통일전선부라고 거기 직원으로 있다가 탈북한 사람이 남한에 와 있다. 우리는 통일전선부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까 모르지만 그곳 직원으로 일했던 이 사람은 통일전선부 지하실 대남자료 전시실에서 본 것이 광주 사태 때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자료가 일체 전시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평양 용선구 용춘2동에 있는 대남사적관에는 북한군이 1950년 이후에 남한에 내려와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남한에서 벌인 일체 자료와 작전내용들이 그 대남사적관에 다 있다. 그 곳에서 제일 비중 큰 전시물이 광주문제이다.
5.18광주항쟁 당시 북한특수전부대원들이 몇 명이나 투입됐는지 아는가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600명 정도 됐을 것이다. 서해안 남포에서 ‘뜨락선’이라는 고깃배로 원양어선을 타고 내려왔다. 황해남도 신천에 있는 복수여단이라고 있다. 이 여단은 상당히 유명한 부대다. 이 부대는 인민무력부 소속이 아니다. 별도의 특수 여단인데 정말 고강도 훈련만 받는 부대이다.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동해와 서해로 양쪽으로 내려왔다는 말인가
동해 쪽으로 내려온 특수부대원들은 하루 만에 내려온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엔 서해 남포에서 잠입한 부대원들이 좀 더 빨리 내려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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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항쟁 때 투입되었다가 살아 돌아간 북한군은 몇 명인지 알고 있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집계하지는 못한다. 우리 대대(임천용 대표가 복무했던 특수부대)에서 총 7명 내려왔다고 들었다. 4명 죽고 3명이 올라갔다. 4명이 다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함장관이가 포함돼 있다. 북한에서 죽었다는 사람은 함장관이 딱 하나 나왔는데 나머지 3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살아 돌아간 특수부대원들에게는 어떤 대우가 주어졌는가
공화국의 영웅 대우 받는다. 북한에서 공화군 영웅을 발표하는 절차가 있다. 남조선에 내려와서 싸우다 죽었거나 돌아가 영웅이 된 사람들은 주로 아침 뉴스로 많이 발표한다. 방송으로 발표하는데 공화국 영웅 명칭은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발표한다.
북한 내에서 남을 위해서 수류탄을 끌어안고 죽거나 남을 위해서 총에 맞아 죽으면 방송에서 엄청 떠든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죽은 사람들은 공식적 발표를 안 한다. 그냥 문서상으로 끝낸다. 남조선에 나가서 공화국 영웅됐다고 (방송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공화국 영웅이 된)의 집이나 문서상으로 공화국 영웅으로 나온다.
(광주 항쟁 당시) 내려왔다가 정확히 몇 명 살아 돌아갔는지에 대한 집계는 다 틀리다. 복수여단 부대원들은 3분의 2도 되나마나 하게 돌아왔다. 타 특수부대에서 모집된 쪽은 절반이나 살아 돌아갔을 정도다. 최종적인 집계는 있을 것이다. 대남사업을 관리했던 이하일은 파악했을 것이다.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어떤 경로로 돌아갔나
돌아갈 때는 거의 3차에 걸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큰 무리는 먼저 서해안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공해상에 이하일이가 떠있었다. 배에서 현장지휘 했으니까. 60-70명 정도 강원도 중부전선을 타고 넘었다.
이 사실은 우리 부대 쪽에서는 인지를 못했는데 중부전선을 넘어 갔다는 것은 타 부대에서 북한군 1군단에 있던 부대원들이 자기네 부대원들의 말을 인용해서 나온 것이다. 중부전선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은 1차로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광주봉기가 끝난 뒤 육로로 빠져나간 것이 가능했다.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광주항쟁 문제와 별개로 남북 간에 전면전이 일어났을 때 북한 특수부대에 어떤 지시가 하달되는가
각 군단별로 정해진 대상 도시가 있다. 우리 부대는 청주였다.
지역별로 담당 부대가 다 할당돼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 부대에서 내가 2대대였는데 청주였고, 1대대는 충주, 3대대 제천, 4대대 포항, 5대대 안동 이런 식으로 한 개 부대가 대상 지역을 한 개씩만 맞는 게 아니라 최소 3개의 특수부대가 1개 지역을 대상으로 맞는다. 청주의 경우, 우리 부대 말고도 임무가 같은 특수부대가 2개 특수부대가 더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청주에 3개의 특수부대가 떨어진다면 (남한에서) 감당 못한다. 1개 대상도시에 1개 북한군 특수부대가 떨어져도 상당히 방어하기 힘든데 1개 대상도시에 3개 특수부대가 투입되면 거 참 (방어하기) 힘들다. 그러나 서울시는 북한 특수부대가 투입되지 않는다.
장사정포 같은 북한의 화력이 닿는 유효 사거리에 들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전시가 아닌 상태에서 별도의 특수임무는 가능 하겠지만 전시에는 특수부대 작전 모델은 없다. 대부분 제주도, 부산, 광주 등 이남 쪽이지 중부지구(수도권)는 특수부대 투입이 없다.
전면전 시 북한군 특수부대의 초기 작전은 어떻게 전개되나
우리 대대가 맡은 청주에는 저수지가 있는데 (접수된 정보에 따르면) 저수 용량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저수지를 폭파시킨다. 그 임무도 저수지 폭파조, 미사일 기지 파괴조로 할당된다. (이 지역에) 미사일 기지가 세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곳도 일단 파괴해야 된다.
1차로 요인 암살이다. 시청, 시의원 간부들을 색출 암살한다. 사회 시설을 폭파시킨 뒤 지역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 다음으로 특수전에서 활용하는 뻔한 수법이 조작과 교란 등이다. 광주사태 때의 시체 문제와 같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조작한다. 그렇게 해서 내부를 와해시키고 조작해 혼란시킨다.
남한에 투입되기 전 대상 도시 주요 요인들에 대한 인물 조사는 사전에 끝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청주시청이라면 시청에 일하는 중진급 이상 간부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 관공서 마다 암살해야 할 요인들의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매 해마다 바뀐다.
(이러한 정보들은) 남한에서 파악돼서 올라가는가
모두 여기서 파악돼서 올라가는 것이다.
남한 군기지 정보 역시 남한에서 파악돼서 올라가는 것인가
그렇다.
고정간첩들이 파악해서 올려 보내주나
고정간첩들이 자료 수집을 하거나 일명 ‘종심’이라고 불리는 단시간 내에 (남한에) 내려 왔다가 임무를 수행하고 올라가거나 여기 와서 자료를 가지고 올라가는 식으로 보면 된다.
종심은 단기 침투간첩을 말하나
그것을 종심이라고 한다. 이런 수집 자료들은 매년마다 (암살)대상들에 대한 자료가 계속 바뀐다.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고 이름이 바뀔 수도 있다. 이름까지 정확히 나와 있다. 가족은 몇 명인지 성향은 무엇인지 다 분석되고 있다.
북한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수집해놓고 있다. 말하자면 광명시라고 하면 시청, 광명경찰서, 행정기관들은 일률적으로 자료가 집계되어 있다. 그렇게 수집된 자료가 없으면 작전을 못한다.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시장을 암살하고 싶으면 시장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암살한다. 1차로 행정기관, 관공서 간부 암살하고, 국가시설 폭파해서 지역 교란 일으킨는 것이 북한특수부대들의 기본 임무다. 북한 특수부대마다 지리적으로 배정이 다 되어 있다.
종심을 활용한 단기 대남 침투 간첩의 활동은 빈번한 편인가
빈번한 편이다. 해상이든 육지든 종심을 하는 데는 여러 군데다. 남한에서는 딱 한 개 기관에서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니다. 대남사업부라는 데가 유일한 큰 기구다. 그 곳에서 별도로 내려 보내는 부대가 있다. 또 통일전선부에서도 간첩관리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간첩 다룬다.
그러나 대부분 군대 쪽에서 내려 보낸다. 정찰부, 각 군단 첩보부 등이 있다. 1군단은 강원도, 5군단은 철원 앞이고 중부전선을 맡고 있는데 이 군단들은 자기네 전방에 대한 종심을 벌인다. 철원, 강원도 이 지역에 대한 종심 정찰은 군단 내 소속된 개체 부대에서 다 한다.
그 군단 안에 있는 두 개의 특수여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렇다. 5군단이 강원도 철원 쪽으로 남침한다고 가정할 때 군단 내 특수부대는 후방 교란이 아니라 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한다. 군단이 치고 나갈 길목에 그 곳을 침투해서 교란시키고 군단이 받아서 그 지역을 점령하고 또 앞으로 나가고 앞으로 진군하는 식이다.
군단 내 2개 특수여단은 그 임무다. 군단 작전을 보장하는 것이 주 임무다. 교도지도국은 후방 교란에 있다. 단기 간첩인 종심의 침투 경로를 말한다면 수십 개의 루트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단기 침투간첩들의 경우 남한으로 잠입했다가 며칠 묵었다가 돌아가는 식의 종심 침투는 북한에서 볼 때 상당히 빈번하다.
북한에 있을 때 보니까 남한 내 고정간첩이 만들어 놓은 자료를 받아오는 걸 많이 했다. 남한에서 수집된 각 신문들도 매일 들어온다. 공식채널로 들어오는 지 비공식 채널로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배달된다. 내가 북한 특수부대 있을 때 남한 신문을 매일 봤다.
마지막으로 자유북한군인연합과 임천용 대표 본인 소개를 한다면
북한 특수부대 대위 출신이다. 19여단 2대대 특전사 교관을 지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은 남한에서 초기에 탈북한 사람들 중에서 특수부대 출신들로만 만들어졌다.
중국에도 우리 단체 회원들이 있고, 북한 내에도 있다. 우리 단체는 테러 단체는 아니지만 북한 내에서 (반김정일 정권을 상대로) 테러가 필요하면 테러를 할 것이다. 예전에 김정일 정권 지도부 사이에서 국제사회에서 거론된 북한 내 반정부 무장투쟁에 대한 지적이 나온 적이 있다.
이 와중에 80% 무장 항거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가 나왔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정일 정권에 항거하는 활동이 폭력이던 비폭력이던 상관없다. 물론 비폭력이 좋지만 비폭력으로는 북한 내에서는 전위 자체가 안 된다. 무장투쟁을 안 하면 북한에서 그 정권에 항거할 수가 없다. 김정일 정권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에서는 지금도 소규모 무장투쟁이 가능하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이 5.18민주화 단체 긴급성명 발표 이후 밝힌 공개 답변
5.18관련단체들은 김정일 정권을 광주의 민주투사로 둔갑시키지 말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의 긴급성명서에 대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대국민 공개답변 서한)
2006년12월20일.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사건에 북한군특수부대요원들이 대거 침투하였으며 순진한 민주봉기를 교란시켜 남한전복을 시도했음을 폭로, 시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바로 다음날(2006.12.21)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는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자유북한군인연합의 5.18북한특수부대 침투 설은 남한의 민주주의 발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사회적책동이며 배후세력의 조종으로 날조되고 조작된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군인연합을 공격하였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5.18관련 단체들의 긴급성명에 대한 내용전반을 심중하게 검토했으며 결과 군인연합 측의 주의주장을 일방적으로 고집하고 쟁론화하기보다 국가안보와 민주주의대의를 위해서도 소모적인 정쟁을 차단하고 국민적인 이해와 단합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데 합의를 모았고, 진실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답변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정하다시피 군인연합의 기자회견은 5.18의 민주화성격에 대해서 논쟁거리를 던지는 부정적인 화두가 아니었으며 민주화봉기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 의미는 민주화의 개념을 떠나서 별도의 기록으로 청사에 남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광주현장에 북한군이 침투하여 짐승도 낯을 붉힐 정도로 살인사건을 조작하고 내부를 교란하여 대결국면을 조장한 것은 북한세상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의 소행이며 1980년 10월 10일, 6차당 대회를 계기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상무위원으로 승격하기 위해서 김일성에게 바친 김정일의 선물임이 분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광주학살의 주범을 김정일 정권이라고 폭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 반사회적책동자가 되고 불법행위자들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애꿎은 탈북자 전반의 입장문제를 거론하며 마치 남한에 와서 죄를 짓고도 무난하게 살고 있는 특정의 사람들처럼, 법 맛을 모르고 덤비는 무지한들처럼 묘사하는 어설픈 작태이다.
객관적으로 봐서도 광주문제와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반박성명이면 말하고자하는 내용이 사실에 입각해서 분명해야 되고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해명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5.18관련단체들의 긴급성명내용은 설명하기 두려운 민감한 문제들은 피해가면서 민주화라고 인정한 법적 규정만을 근거로 필연적인 해명을 요하는 미지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을 일축하고 있다. 근거를 가지고 김정일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는가.
언제, 어느 누구가 광주봉기를 민주화가 아니라고 못질을 했고 억울한 희생자들을 폭도로 매도했으며, 누가 감히 광주사건을 이용하여 남한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반국가적인 행위와 같은 불순한 음모를 저지르려 한단 말인가. 공개적으로 반사회적책동이고 불법행위라고 주장한 사실에 대해서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
광주항쟁의 배후에 침투하여 유혈사태를 조장 하고 봉기를 전국으로 확대하려 했던 북한군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광주사건의 진상이 허울을 벗기 시작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서푼짜리 명예와 치적으로 이를 가리려고 몸부림치는지 그 진의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알건대 당시 가해자로 취급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남한사회의 어떤 위인들도 감히 다치기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광주사건의 진상과 관련된 문제이다. 사안적으로 비중이 있는 문제를 남한의 민주주의역사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북한군출신들이 주동적으로 나서서 시인하고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유도 되지 못할 없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기 전에 귀를 열고 조심스럽게 신경을 써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나 싶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기자회견을 불법과 반사회적인 음모로 취급한다면 5.18관련 단체들의 긴급성명내용은 국가적인 사안은 개념 치 않고 민주화라는 간판에 매달려서 실리와 향수를 챙기려 하는 소인배들의 기득권적인 행태라고 평가한다. 산자들 가운데서 민주화의 업적을 운운한다면 광주에서 희생당한 사람들만큼 영웅적인 업적이 있는 사람이 누구이고 손해를 본 사람이 있으면 북한군의 희생양으로 애석하게 죽은 그 사람들만큼 큰 손해를 본 사람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어디 한번 떳떳하게 얼굴 들고 나서보라. 우리는 좌와 우의 어느 한쪽 입장에서 다른 일방을 매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주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3자의 시각과 공정한 논리를 기준으로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인 견해를 피력할 뿐이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값에 밥그릇과 명분을 걸기 전에 진정 그들의 장거와 민주화를 후대에 기리고 싶다면 살아있는 사람들만큼은 광주학살의 주범이 김정일 정권임을 똑바로 인식해야 희생자들도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잔인하고 유혈적인 광주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도 깜깜 모르면서 실정을 거꾸로 둔갑시켜 소위 자신들의 영웅담이라고 말장난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체를 알 수 없고 지극히 반국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군 개입에 대한 인적, 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점에 이의를 달고 특정집단의 소유물로 홀가분하게 처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한 개국 이래 60년이 넘도록 북한정권이 남한사회의 내부를 지속적으로 공격해온 사실들이 분명히 존재하면 보다 침착하고 심중성을 기해야 되는 것이 바로 광주문제다.
미성년자인 이승복의 입을 찢어 죽인 1968년 공비사건, 1968년1월21일 청와대 습격사건, 1983년 미얀마 아웅산묘 폭발테러사건, 2002년6월 서해교전사건 등 초대형 사건들은 북한정권의 소행으로 사실이 입증됐다는데 대해서 어느 누구도 감히 부인하지 못한다.
만약 이승복 군이 공산당이 싫다고 절규하면서 저지른 비명소리를 주위의 인척들이 증언하지 못하고 법이 이를 뒷받침 하지 못했다면 입이 찢기고 잔인하게 학살당한 철없는 9살짜리의 원혼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었는가. 청와대 습격사건 당시 임무를 받고 내려온 김신조가 체포되지 않았으면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단서를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었는가.
17명의 고위급관료들이 대거 폭사당한 아웅산묘 폭발테러사건 역시 체포된 북한공작원의 진술이 없었으면 해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고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선전한 그대로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사건에서 건별 증거가 확보되지 못했다면 북한이 조작한 모든 사건의 항목과 중심축에서 북한이라는 조목은 빠지고 사건 전반이 미궁 속에 해명불가로 방치되어 있을 것이 번한 일이다. 2002년6월29일,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일어난 교전 당시 북한함정에 국적이 확인될만한 증거가 없었고, 북한이 저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우겼으면 남한정권은 북한의 도발이라고 단호하게 상대를 지목하지 못했을 것이다.
초불시위와 평택미군기지 반대 투쟁에 북한의 대남공작부서가 일심회와 같은 내부간첩조직망을 동원한 사실이 최근에 검찰에 의해서 밝혀졌다. 현장에서 증거가 포착된 사건들이 아니라 사법당국의 수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광주사건과 연관지어볼만한 일말의 근거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과학적인 증거가 안받침 되지 못한다는 단순한 조건이 질적으로 나쁜 행위를 상습적으로 반복해오고 있는 북한정권의 광주만행을 덮어야 하는 정당성이라도 되는가.
김일성, 김정일이 인정하고 북한군뿐만이 아니라 북한사회 전체가 알고 있는, 도저히 묻어버릴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이를 아니라고 부정하는 5.18관련단체들의 용기와 결단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5.18관련단체들이 우리의 주장을 부정하고 광주사건 당시의 북한군 개입을 일축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있다면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요구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점적인 사안들을 국민들 앞에서 직접 부인, 해명하라.
첫째, 광주사건에 개입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서 현재 살아있는 참가자들의 증언이 날조라고 반박하라. 광주와 관련된 김일성, 김정일의 발언이 고의적임을 반박하라. 김일성 김정일에게 직접들은 김선일과 같은 김 부자 직계가족의 광주발언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라. 1980년 5.18당시 북한군특수부대들이 전투준비 동원령을 받고 각 부대의 임무사항에 따라 실전을 위한 대기상태에 임했던 사실에 대해서 아니라고 반박하라.
5.18이후 각 군단 사여단 정치부 및 참모부에 발송된 광주사건과 관련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총참모부 기밀문건은 출처가 없는 것이라고 해명하라. 탈북하여 현재 남한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군특전사 및 일반부대 군관 하사관, 사회요직의 주요 인물들이 확실하게 증언하는 광주사건 내용들이 배후세력의 사주를 받고 서로 입을 맞춘 것이라고 증거를 제시하라.
기자회견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광주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북한쪽의 자료에 근거한다는 것을 시사한바 있다. 또한 정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북한쪽에서 인지한 자료와 광주사건 당시 현장자료의 일치성에 무조건 적인 심중을 기했다.
우리는 계엄군 및 봉기군 중 어느 한쪽에 편중하는 식으로 일방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며 양쪽의 견해를 모두 청취하고 근거가 될 만한 자료만을 첨부하였다. 결과적으로 광주사건에 대한 군인연합의 기자회견내용은 전적으로 북한자료에 의존한 것이며 남한 쪽의 자료는 확인차원에서 부차적으로 이용하였다.
우리가 자신 있게 증명하고 있는 북한의 대상, 상황, 시기 등 각 채널별로 확인된 바 있는 광주사건 증빙자료는 북한정권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으로써 북한군 개입을 확실하게 증명시켜 주는 생생한 물증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만약 우리의 주장이 미덥지 못하고 부인할 근거가 있다면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게 사안별로 조목조목 반대의 근거를 제시하라.
둘째, 광주사건 당시 희생된 신원 미 상자들 중 현재까지 신원과 출처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원인을 설명하라.
5.18관련단체들의 주장에 의하면 광주사건 희생자 중 신원 미 상자는 11명이었으며 2002년에 6명의 신원이 밝혀지고 현재 남아있는 미해명 자는 5명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광주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신원조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있었음은 분명할진대 1980년 이후로 22년의 긴 세월 동안 밝혀내지 못했던 신원이 어떻게 되어 일부사람들의 제기로 광주문제가 거론되었던 2002년 한해를 정해서 한꺼번에 6명이 밝혀졌고 공백 기간이 왜 길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북한과 달리 남한은 주민등록법이 북한보다 먼저 진행되었고 친척이나 직계가족의 존재여부에 관계없이 신원규명에 대한 법적수단과 절차가 과학적이며 6.25전쟁당시 사망한 사람의 뼈 조각에서도 신원을 해명해내는 첨단화된 수사능력을 갖고 있다. 가능한 모든 조건을 전제로 할 때 6명에 대한 신원확인이 시기적으로 늦어진 이유와 현재까지 신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미해명 자 5명에 대해서 기타한 사정의 여부를 떠나서 민감하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에서 죽었다는 이유는 길거리에서 구경정도나 하다가 어설픈 총알에 맞아 죽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정체가 어떻든 직접 현장에서, 그것도 상대방의 표적으로 죽었음을 의미한다. 목이 잘려나가 얼굴이 없는 시신은 해명했다면서 동일한 현장에서 죽은 다른 시신은 무엇 때문에 신원이 불가능한 것인가.
내국인이 아니면 외국인이라는 증명이라도 반드시 나와야 되는 것이 사망자들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고 적법절차이다. 미해명 자들은 대한민국에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들인가. 대한민국과 국외에도 근거할만한 출처와 자료가 없는 사람들의 정체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대답하라. 50년이 넘은 시체는 확인이 가능하고 30년도 안된 시체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셋째, 나체바람으로 목과 팔이 잘려나간 여성의 시신과 두개골을 톱으로 조각낸 시신, 등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시신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해명하라.
공개되지 않은 시신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면 그 방법이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고, 살인 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계엄군을 민주진영에서 말하는 폭군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죽이는 것이 임무가 아니고 봉기를 방어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인데 정신이상이 아닌 상황에서 여성의 몸을 발가벗기고 목과 팔을 자르고 두개골을 톱으로 조각내서 상대를 자극하는 식으로 봉기군의 반발을 의도적으로 촉발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은가.
계엄군의 전부가 영남사람들이 아니라면 광주나 전라도에 고향을 둔 이웃이고 자식이고 형제인데 그들이 무조건 명령을 따라야 하는 공공의 임무를 지녔다고 해도 이웃에 대해서 하늘도 진노할 그 야만적인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가. 북한군당사자들이 환각제를 먹었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현장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에게도 환각제를 먹였었는가.
시신들의 정체는 분명히 모략인 부분이 있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광주학살의 책임을 계엄군에게 묻는데서 또 하나 회유적인 것은 등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다. 당시 전두환군부의 실세로 있던 A씨는 사건당시 병원에 실려 온 현장의 사망자들을 확인하면 앞에서 맞아죽은 사람보다 뒤에서 맞아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증인하였다.
광주사건의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백 프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광주사건에 개입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과 현장에서 발굴된 사진은 그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확인시킨다. 뒤에서 맞아죽은 것이 실수라면 제한된 숫자 이상은 벗어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정상인데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숱한 사람들이 등 뒤에서 총알을 받을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인가.
이것을 계엄군의 고의적인 소행이라고 설명하면 말 그대로 도망가는 봉기군을 돌려세워 자기들에게 맞불질하게 만들고, 봉기를 확대시킬 의도로 뒤에다 대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누가 봐도 억지라고 인정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이고 기정사실로 받아 들일만한 일인가.
넷째, 민주화라는 정상적인 행위를 하는 시위자들이 무슨 사정으로 죄인들이 갇혀 있는 교도소를 습격했는지 설명하라.
방산업체와 방송국, 경찰서를 비롯한 국가기관들에 대한 봉기군의 습격은 분명히 불법이지만 과격적인 봉기의 행태로 볼 때 어느 정도 민감한 부분은 비켜갈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기관 점거와 교도소에 대한 습격은 질적으로 성격과 의미가 확실히 다른 차원이다.
교도소는 제도의 행정을 위반하고 사회적으로 악을 저지른 자들의 책임을 묻는, 법적인 원칙에 따라 사회적으로 격리된 장소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법적제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할 의무까지 있었단 말인가.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것은 사회의 적인 죄수들을 구출해서 봉기의 선봉에 돌격대로 세우려 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광주봉기는 민주화를 위한 봉기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국가전복을 노린 자들의 반란이라는 답이 나온다. 감옥을 부수고 죄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광주봉기의 성격이었는가. 봉기군이 죄수들을 구출해내는 것이 합법적인 민주화인가.
다섯째, 탱크와 장갑차를 비롯해서 대형 중장비들을 특수적인 훈련을 전수받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게릴라 및 특수전을 전문으로 하는 요원들도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일을 일반인들이 자유자재로 다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통하는 일인가.
북한 군인들도 특수병종을 제외한 일반부대 군인들은 자기무기 외에 특수한 타 무기에 대한 조작법에 정통하지 못한다. 특이하게 전문병종은 그런 격차를 더 크게 가지고 있다. 이런 관례는 비단 북한군뿐만이 아니라 어느 국가 정규군에서나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관행이며 흐름이다.
광주사건 현장에서 시위자들은 계엄군이 소유한 탱크와 장갑차를 쉽게 탈취하여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정규군을 상대했으며 심지어 전차로 군인들을 깔아뭉개는 고도의 기술수단까지 발휘했다. 시위자들 속에 전문병종에서 복무한 사람들이 없다고 보는 것도 한계가 있지만 봉기전반의 흐름이 훈련된 전문가 집단 못지않게 각종 기재를 다루며 전력을 과시한 것은 별도의 특수한 인원들이 존재했음을 증명시켜 준다.
광주사건에 참가했다가 손등에 관통상을 입은 북한쪽의 증언자는 광주현장에서 전차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했음을 김정일의 사촌동생 김선일 앞에서 분명히 시인했다. 의심이 가중되는 것은 북한에 비해 군복무기간이 3분의 1도 안 되는 남한실정에서, 그것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주도한 작전치고 너무 치밀하고 규칙적인 냄새가 났으며 더욱 해괴한 것은 북한식 소부대 작전에서 적용되는 교란, 와해, 조작, 사살과 같은 특수전의 수법이 그대로 활용된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5.18관련단체들은 상기 내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섯째, 봉기군이 무슨 이유로 반쪽짜리 어설픈 군인복장을 하고 같은 동지인 봉기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는지 해명하라.
사진을 관찰하면 머리를 비롯해서 외모 상 군인이 아닌 군인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을 무조건 위장한 북한군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지만 특이하게 머리상태나 복장착용상태가 정규군의 외모는 절대로 아니다.
항간의 여론도 이 장면에 대해서 군인이 아니라는데 절대적으로 공감이다. 그렇다면 봉기군 중에 일부라고 짐작해야 되는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정체를 가리고 이런 장면을 연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이 증폭된다.
만약 계엄군의 행위를 인위적으로 가공하기 위한 봉기군의 선전용 작품이라면 순수하게 민주화를 위해 나섰다는 사람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봐야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은 모종의 배후세력이 진압군으로 위장하여 실제로 봉기군을 사살하고 그들을 자극하여 반발을 야기 시키기 위한 행위였다고 봐야 한다. 사진에 옮겨진 장면은 실제로 행동하는 모습이 우발적으로 카메라에 잡힌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의식한 준비된 포즈에 가깝다. 이들의 정체를 누구라고 판단해야 되는가. 진압군인가. 봉기군인가. 아니면 북한군인가. 그들이 과연 누구인가.
5.18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는 위의 사항들에 대해서 완전무결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으면 광주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말꼬리 잡고 논쟁거리를 만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재삼 강조하지만 광주봉기는 분명히 민주화였으며 희생자들은 단순한 민주화인사가 아니라 적들에 의해서 희생당한 애국 열사들임을 우리는 인정한다.
5.18관련단체들은 물론 어느 세력이든 정치적 목적으로 감히 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광주문제에 손대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충고한다. 수십만 명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있는 살인독재자 김정일을 “통치의 성공”자라고 추앙하는 통일부장관 이재정과 같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들먹거릴 자격이 있는가.
남한의 민주화와 북한의 민주화가 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고 떼죽음을 당하는 북한인민들이 민주화의 대상에서 왜 배제되어야 하는가. 김정일의 통치가 입증됐으면 북한인민들의 죽음은 합법적이라는 소리인가. 민주화의 가치도 판단하지 못하는 자들이 애꿎은 민주화를 인질로 잡고 광주사건을 호도하고 북한인민들을 능멸하는 작태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행위이다.
광주사건을 제물로 국익을 난도질 하는 가짜 민주진영의 이중인격자들의 행위는 시국의 흐름으로 봐서도 결코 묵과할 수 없다. 민주화를 위해 나섰다가 북한군에 의해서 안타깝게 희생당한 영혼들이 제도를 붕괴시키고 불법행위에 앞장서는 자들의 이미지가 될 수 없고 가치와 인격을 대변해 주는 명함장이 될 수 없다. 작금의 남한정세는 좌파, 우파로 편을 갈라서 색깔정쟁을 하고 친북, 반북과 같은 철없는 논쟁거리를 만들어서 국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
김정일을 추앙하고 북한독재체제를 신봉하는 반역자들이 아니라면 국익에 심장을 내대고 목숨을 걸어야 할 최후의 시기이다. 5.18관련단체들은 근거가 있으면 자유북한군인연합이나 어느 특정인물을 상대로 법 기관에 백번 소송을 해도 좋고 철퇴를 가지고와서 머리를 박살내도 좋다. 그러나 초졸 한 밥그릇에 목숨을 걸고 생떼를 쓰기 전에 진정한 민주화가 무엇이고 국익과 개인이 무엇인지 단 한번만이라도 먼저 생각해보고 행동하라.
광주사태에 개입했던 북한군 실체에 대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주장은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문제를 끝까지 해명할 것이며 광주사건에서 저지른 대학살의 주범이 김정일임을 세상 앞에 사실 그대로 공개할 것이다. 5.18관련단체들은 소중한 민주화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광주사건의 진상을 해명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충고한다.
자 유 북 한 군 인 연 합
대 표 임 천 용
2007년 1월 25일
고동석 기자 kds@newshankuk.com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g2=108&g3=